아녜스 바르다의 말 (조선)
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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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아녜스 바르다 |
분야 |
인문 |
출판 |
마음산책 (20.05) |
청구기호 |
<책 소개>
사진, 영화, 설치 미술까지 분야를 넘나든 전방위 예술가
아녜스 바르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해주는 국내 첫 책
데뷔작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1954)으로 영화사의 새로운 시대를 열며 일찌감치 ‘누벨바그의 대모’라는 수식어를 거머쥔 아녜스 바르다. 그는 기성 상업 영화의 관습을 거부하고 저예산, 즉흥성, 자유로운 촬영 기법을 중시한 누벨바그의 선구자로 불린다. 첫 작품을 만들기 전까지 영화를 거의 보지 않았다는 고백처럼 바르다는 영화를 잘 몰랐기에 오히려 기존의 영화 어법을 답습하지 않을 수 있었다. 사진가로서 예술가 인생에 첫발을 내디딘 바르다는 “사진을 찍는 건 세상을 보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국립민중극장의 공식 사진가로 당대 유명 배우들의 사진을 찍으며 영화와의 연결 고리가 생겨났고, 자연스레 영화라는 또 다른 표현 수단을 얻게 됐다. 사진과 영화를 병행하며 폭넓은 작품 세계를 펼쳐 보이던 그는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2003) 촬영 중 발견한 감자를 설치 미술 작품으로 발전시키며 미술작가로의 행보를 시작한다. 머릿속에 펼쳐진 드넓은 세계를 시각적 우주로 만들어내는 방식에 한계란 없었다. 그러나 평생 쌓아 올린 바르다의 명성과 업적은 철저하게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에리크 로메르 등 같은 시대 남성 감독들 뒤에 놓여 왔다. “저는 그저 완벽한 문화적 도구일 뿐이에요. 사람들은 제가 시네마테크나 도서관에 어울린다고 생각하죠. 저는 잊힐 거예요.”
마음산책 열네 번째 ‘말 시리즈’의 주인공은 영화를 만드는 매 순간 “호랑이처럼 싸워야만” 했던 아녜스 바르다이다. 그는 누벨바그의 유일한 여성 감독으로 주체적인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발견하는 모순들을 끊임없이 조명해왔다. 처음으로 국내에 바르다를 소개하는 책 『아녜스 바르다의 말』에는 1962년부터 2017년까지 55년의 세월을 가로지르는 스무 편의 인터뷰가 담겼다. 연도순으로 각본가, 영화평론가, 배우 등 각기 다른 스무 명의 인터뷰어와 나누는 때론 유쾌하게 장난스럽고 때론 묵직하게 진솔한 대화들은 읽는 이를 웃고 울게 한다.
유년 시절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자란 덕에 자유의 감각을 얻게 되었다는 일화부터 영화감독이자 창작자로서 느끼는 고충과 희열, 외부 반응에 휘둘리지 않으며 예술적 자아를 유지하는 힘, 삶과 사람을 향한 애정, 여성운동의 흐름에 대한 견해까지 내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인터뷰 당시 상황에 따라 감정이 격해질 때도 있고 같은 사안에 대해 다른 견해를 보이는 경우도 있는데, 이 또한 즉흥적인 발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톡톡한 매력이다. 아녜스 바르다의 작품 세계뿐만 아니라 그의 생애까지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아녜스 바르다의 말』은 그 자체로 귀중한 자료집 역할을 한다. 2019년 아흔의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난 “작고 통통한 수다쟁이 할머니”는 작품을 넘어 그 자신의 말들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에너지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 곧 죽겠죠. 하지만 제 작품은 저 스스로도 존중해요. 제 작품을 칭찬한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싸워서 얻어낸, 싸울 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의미로요. 돈도 없이, 힘도 없이, 보답도 없이 늘 투쟁해왔죠. 찾는 사람이 없어 한동안 손을 놓기도 했고요. 사람들은 제가 이런 영화들을 만드는 걸 원치 않아요. 제작비를 지원하지 않아요. 완성된 제 작품엔 박수를 보내면서도 말이죠.
─258쪽
바르다는 늘 경계에 서 있었다. 스스로 자신을 주변인으로 여겼다. 기존의 방식에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실험을 시도했다. 사진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설치 미술로 자연스럽게 새 영토를 개척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바로 지금 자신에게 적합한 표현 수단을 찾았다. 그의 삶이 그의 작품 목록만큼이나 풍성해 보이는 이유는 끊임없이 세상과 교감하며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스스로의 눈으로 보고 느끼고 표현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바르다에게 주된 표현 도구는 영화였고, 그는 그 도구를 마음껏 활용했다. 더할 나위 없이.
─407쪽 ‘옮긴이의 말’ 중에서
<출판사 서평>
휴머니즘과 굽히지 않는 긍정주의로 빚어낸 작품 세계
바르다의 관심은 늘 지금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와 그 세계를 구성하는 사람들을 향했다. 삶에서 포착한 문제의식을 유의미하게 전달하기 위해 바르다는 허구와 실재를 결합하는 표현 방식을 고수한다. “다큐멘터리와 픽션이라는 두 장르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한 노력은 실제 마을 주민들과 배우들을 함께 출연시킨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에서부터 시작한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1962)에서 클레오가 바라보는 거리 또한 실제 거리의 풍경을 그대로 담아내 최대한 다큐멘터리의 질감을 살리려 했다. 떠돌이 소녀의 죽음을 회고적으로 돌아보는 〈방랑자〉(1985), 40세 여성과 15세 소년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아무도 모르게〉(1987), 남편 자크 드미의 어린 시절을 탐구한 〈낭트의 자코〉(1991) 등 바르다의 픽션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절묘하게 오간다.
이러한 영화 만들기는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 탐구적이고 실험정신 강한 바르다의 성향에서 비롯되었다. 첫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화 〈오페라 무프 거리〉(1958)에서는 한 임신부가 무프타르 거리를 거닐며 품는 다양한 상념들을 접이식 의자 위에 올라가 담아냈다. 〈다게레오 타입〉(1975)에서는 80미터짜리 전선을 다른 차원의 탯줄로 상상하며 그 범위 안에 사는 주변 이웃들을 보여준다. 남이 버린 물건과 음식을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실제 인물들의 모습을 그려낸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2000)는 형식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영화계 안팎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서 멈추지 않은 바르다는 젊은 예술가 JR과 사진 트럭을 타고 프랑스 마을을 돌아다니며 촬영한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로 “시네마로 쓰는 에세이의 정점”(김혜리)에 올라섰다.
한동안 영화에 전념하던 바르다는 일흔 중반에 들어서 설치 미술로 보다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일찍이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소통하고 함께 나누기 위해서”라고 말했던 그는, 관객들을 작품 속으로 더욱 친밀하게 끌어들일 수 있는 설치 미술에 큰 매력을 느끼며 작업을 이어간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활동 영역의 확장에도 변함없이 바르다의 내면 한가운데 자리했던 것은 사람과 삶을 향한 애정이었다. 그런 휴머니스트적인 면모야말로 바르다의 예술 생애를 지탱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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